블록체인 기술로 보는 세상 변화 시리즈 7 - 스마트 계약
이더리움의 계약 자동화: 스마트 계약이 바꾸는 법률 혁신의 미래
오랜 시간 동안 계약은 종이 문서, 서명, 중재자 또는 법률 기관을 거치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실행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복잡한 계약 체계를 디지털화하려는 시도가 등장했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더리움(Ethereum)의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기술이 있다.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전에 정의된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계약 코드이며, 제삼자의 개입 없이도 계약 이행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법률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기존 계약 체계는 신뢰와 증명의 기반이 중앙화된 기관에 있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거래나 금융 계약을 체결할 때 법률 전문가, 공증인, 금융기관이 반드시 개입해야 했다. 그러나 이더리움 기반의 계약 자동화는 신뢰를 블록체인이라는 분산된 네트워크 시스템에 분산시킴으로써, 계약 당사자 간 직접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이더리움은 단순히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이러한 법률적 절차의 코드화(Code-as-Law)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다. 결과적으로 계약의 ‘작성-검증-이행’ 전 과정에서 자동화가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법률 업무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
스마트 계약의 핵심 기술과 실제 활용 사례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은 솔리디티(Solidity)라는 자체 개발 언어로 작성되며, 블록체인에 배포되면 누구나 열람 가능하고 수정이 불가능한 불변성(immu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을 갖춘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며, 외부 데이터가 필요한 경우에는 오라클(Oracle)을 통해 현실 세계의 정보를 가져와 실행 조건을 평가한다. 이러한 기능은 계약 이행에서 가장 큰 문제인 ‘신뢰와 확인’을 코드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예를 들어, 2022년 오픈한 Mattereum이라는 프로젝트는 실제로 법적 효력을 갖는 자산 소유권 이전을 스마트 계약으로 구현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더리움 기반 스마트 계약을 통해 고가의 와인, 미술품, 악기와 같은 실물 자산의 거래를 자동화하였고, 거래 조건, 보증, 책임 범위 등이 모두 계약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 또 다른 예로는 Rocket Lawyer 같은 법률 서비스 플랫폼이 있다. 이 기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온라인 계약서 자동화와 스마트 계약 기반 분쟁 예방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이외에도 보험, 부동산, 로열티 지급, 게임 아이템 거래, 프리랜서 계약 등에서 스마트 계약은 실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계약 실행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법률 산업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와 기대 효과
스마트 계약은 법률 산업의 업무처리 방식 자체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분야는 계약서 작성 및 검토 업무다. 지금까지는 계약 당사자들이 법률 자문을 받고, 전문 변호사가 계약 조항을 해석하고 작성해야 했지만, 계약 자동화가 보편화되면 계약 내용이 코드로 정형화되고, 조건이 명확히 정의되어 별도 검토 없이도 자동 실행이 가능해진다. 특히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계약(예: 임대 계약, 근로계약, 라이선스 계약 등)은 스마트 계약 템플릿화를 통해 자동화 가능성이 높다.
둘째, 중재와 분쟁 해결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기존에는 계약 이행 불이행 시 법원 또는 중재 기구를 통해 다툼을 해결했지만, 스마트 계약은 조건이 명확하고 자동 실행되기 때문에 분쟁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줄여준다. 향후에는 오프체인 분쟁을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에서 다루기 위한 ‘디지털 중재 DAO’, 또는 ‘탈중앙 온라인 법정’의 등장도 예상된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중소기업이나 개인 프리랜서, 크리에이터처럼 법률 지원이 제한적인 집단에 더 큰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비용, 시간, 리스크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스마트 계약 도입을 위한 과제와 한국의 기회
스마트 계약의 혁신성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가장 먼저 법적 효력의 인정 여부가 관건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블록체인 계약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명시적인 동의, 서명, 공증 등의 요건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코드상의 오류나 해킹, 오라클 조작 등 기술적 문제도 계약 효력을 흔들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 계약이 기존 계약 체계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기술의 접점을 제도화하는 정비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2023년부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함께 스마트 계약의 법적 효력에 대한 연구와 입법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반 전자계약 서비스 실증사업’을 시범 운영했으며, 일부 스타트업은 프리랜서 계약, 정산 자동화, 콘텐츠 사용료 지급 등의 자동 계약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이더리움은 국내 개발자와 기업에 가장 친숙한 스마트 계약 플랫폼으로, Web 3.0 환경에서도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향후 한국이 스마트 계약 기반의 전자계약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법률 체계의 유연화, 스마트 계약 검증 시스템, 사용자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계약 자동화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법률 구조 자체의 진화를 촉진하는 혁신의 핵심이 될 것이다.